'신변잡기'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08/12/15] 남이 잘 때 잠들지 않는 자의 주장 (4)
  2. [2008/09/30] 생도 사람들 찍고 찍힌
  3. [2008/08/30] 따님과 정은과 분씨와 용과 박물관
  4. [2008/08/20]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
  5. [2008/08/09] 나도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 (1)
  6. [2008/08/05] 생도관 홍보의 책자 사진 (2)
  7. [2008/08/01] 불온 서적의 등장 (1)
  8. [2008/07/22] 문화, 계급 (2)
  9. [2008/06/22]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 (2)
  10. [2008/06/17] 또 사진! (1)

남이 잘 때 잠들지 않는 자의 주장

by 이장 [신변잡기]
나는 아침이 싫다.
아침 9시는 누군가는 잠에서 깨 활동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잠들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동물은 양껏 자면 더 잘 수도 없다. 인간도 그렇다.
양껏 자고 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그럼에도 오직 인간만이 자명종 소리에 맞춰 아침 8시에 동시에 일어난다.
좀비영화에서 관에서 좀비들이 밤이 오면 시간 맞춰 일어나는 것처럼,
인간이 자명종 소리에 맞춰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일면 그로테스크한 장면이다.

대학생이 되어 좋은 점 중에 하나가 생활리듬을 내 마음껏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1학년 때 필수수업이 혐오스러웠던 이유 중 하나가 내 생활리듬을 학교가 나에게 아무런 언급도 없이 정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시간에 일어나 그 수업을 듣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안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불이익을 받았다. 나는 그 수업을 듣는 것을 원치 않았음에도!
이 얼마나 비민주적인가.

나는 느림의 미학을 선동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나처럼 살 것을 권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믿는대로 살고, 나는 내가 믿는대로 살면 그 뿐이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서점에서 아침형 인간 따위의 허접한 논리를 늘어놓는 쓰레기들이 사라질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자유가 아직 멀었음을 느낀다.

자유란 가능한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이는 방임과는 다르다.
'남에게 피해만 안주면 되지'와 같은 상대주의자의 이야기와도 다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나는 생각이 없어요'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사회적 규범을 파탄내자는 것과도 다르다. 인간들이 모여사는 사회에서 규범은 자연적으로 생겨날 수 밖에 없다.
다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권위에 의해 혹은 어떤 목적을 위해 정해진 규범, 그 소름끼치는 강박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란 또한 평등과 다르지 않다. 평등이 없다면 자유도 없다. 내가 누군가의 노예라면 나에게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유 없이는 평등도 없다. 모든 인간이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 사회를 어떻게 평등한 사회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꿈꾼다. 그러므로 나는 자본이 강요하는 성실한 근로자가 되기 위해 정성껏 알람을 맞추는 삶의 낭비를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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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도 사람들 찍고 찍힌

by 히옌느 [신변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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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시티의 정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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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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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수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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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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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삼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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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웃는 정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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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단 여자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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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각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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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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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코를 달고 태어난 것 같은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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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잘 어울리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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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맑게 웃으면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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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난 히엔느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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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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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심을 품고 있는 히엔느(와 싫어하는 베이비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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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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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님과 정은과 분씨와 용과 박물관

by 히옌느 [신변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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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

by [신변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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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으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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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

by [신변잡기]

나도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

나도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 어릴 때는 누구나 이런 꿈을 꾸었을 것이다. 어릴 때는 다른 꿈도 많이 꾼다. 발명가, 과학자, 대통령, 세계정복, 우주 비행사 기타 등등. 이제 와서 생각하면 개꿈들이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다른 꿈들은 좀 허황되긴 해도 아예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세계 정복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시도' 정도야 할 수 있다. 대통령? 대통령 선거에 나가려면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이면 되고 전국에서 2,500~5,000명 정도의 추천을 받아 5억 원의 기탁금을 내면 된다. 이정도야 뭐 좀 어렵긴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런데 올림픽에 나가는 것만은 절대 할 수 없다. 절대 안 된다.

하지만 나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만일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때 쯤, 집에 가다가 나를 우연히 본 학교 농구부 선생님에게 "너 참 키가 크구나. 농구부를 하면 딱 좋겠어. 농구부에 오면 빵이랑 우유도 매일 주는데 같이 갈래?"이런 제안을 받았더라면 나도 혹시 올림픽에 나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농구부에 들어가서 매일 공만 튀기고 가끔 맞아도 가며 훈련했는데 중학생이 되어 키가 안 크면? "농구는 키로만 하는 게 아니니까 걱정마라"라는 위로를 받겠지만 그래도 키가 안 자라면? 이런 걱정 때문에 나는 제의를 받았더라도 농구부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들 대다수가 그냥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하라는 공부하고 살아왔고 살아간다. 어린 나이에 불확실하고 힘든 분야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 나이도 많고 훈련도 제대로 한 적 없지만 정말로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 왜냐고? 나는 사실 탁구의 천재다. 내 주변에 나를 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보다 탁구 잘 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하지만 나는 탁구가 아니라 배드민턴 선수로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 사실 나는 그저께 처음 배드민턴을 쳐봤다. 그런데 꽤 재미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동네 할아버지들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과 배드민턴을 한번 쳐보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올림픽에 나가려면 국가대표 선발경기부터 해서 경쟁 끝에 뽑혀야 한다. 올림픽에 나가고 싶은 사람이 모두 나갈 수는 없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발경기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다. 나는 국가대표 선발경기에 나갈 수 없다. 아니, 왜 못 나가는가?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참 이상한 일이다.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인데 어떤 소수의 사람들만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고 대다수의 사람은 국가대표를 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전혀 없다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상황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한다.

올림픽을 통해 '태극전사'들이 '국위'를 '선양'하고 '한민족'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널리 알릴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국민들은 올림픽에 '출전'한 '영웅'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지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올림픽에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그래서 '출전' 할 사람들은 금메달'의 '산실'인 '태릉선수촌'에서 '극한'의 훈련을 견디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명예'를 걸고 그리고 병역혜택과 포상금 등을 위해서, 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영광'을 위해 올림픽에서 전 세계와 경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올림픽에는 '아무나' 나가서는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올림픽에 '아무나' 나가서야 전 세계인에게 '대'한민국의 '위용'을 떨칠 수야 없겠지.

하지만 나는 의문이 든다. 정말 올림픽을 통해 국위를 선양 할 수 있나? 그러니까 한국의 어떤 선수가 금메달을 딴다고 하면 그 경기를 보던 세계인들이 "와 한국 정말 대단하구나. 정말 우수한 민족이야." 라고 생각할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내가 올림픽을 보면서 다른 나라의 '국위'에 압도되는 경우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올림픽을 보면서 다른 나라 사람이 금메달을 따는 것 자체를 별로 본 적이 없다. 내가 본 올림픽에서는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환호한다. 아, 한국 선수와 결승전에서 다른 나라 선수가 이겼을 경우에는 다른 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걸 본 경우가 좀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는 나 스스로가 우울해져서 채널을 돌리거나 그 전에 방송국에서 알아서 아쉬워하며 방송을 마무리지어준다. 그리고 잊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아쉽게도 다른 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며 그 '국위'에 압도된 적이 없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도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것을 유심히 보며 '한국 짱'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을까? 그들도 결국 자기네 나라 선수 위주로 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올림픽을 통해 '국위'를 '선양'한다는 생각은 실체가 없는 환상 같다. 물론 중국이나 미국 같은 나라가 금메달을 수십 개씩 따는 걸 보면 참 대단한 것 같다. 그들의 '국위'는 참 대단하다. 그런데 그 나라들은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원래 무섭고 큰 나라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분명히 올림픽을 통해 '국위'를 '선양'할 수 있다. 다만 그 대상은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다. 국가대표경기를 보며 열광하고 금메달을 따는 감동적인 순간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시청하는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우리'가 '우리'나라의 '국위'에 감탄한다. "아 대한민국 짱 ㅠㅠ" 그리고 방송이 끝나며 등장하는 광고. 올림픽 공식 파트너 0000000.

물론 올림픽을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일단 운동경기는 그 자체로 재미가 있다. 땀 흘려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도 감동을 준다. 하지만 내가 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도 없어서야 되겠는가. 나를 올림픽의 시청자로 제한하고 응원단으로 제한하고 올림픽 광고의 소비자로만 제한하려고 하는 일련의 조치들이 있는 한 올림픽은 그 뻔지르르한 신성함과 거리가 멀다. 학교 다닐 때 옆 반과 축구시합을 하려고 반 대표선수를 뽑는데 반장놈이 와서 "넌 응원이나 해."라고 한다면 얼마나 기분 나쁜 일인가. 내가 축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반의 떳떳한 구성원인 내가 대표가 될 가능성조차 박탈당한다면?

또한 올림픽만을 바라보며 평생을 바치는 엘리트 선수들도 피해자다. 세계 2위인 은메달을 따서도 국민께 '죄송'해 하거나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하는 사람들이다.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왜 나는 올림픽에 나갈 수 없고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비인간적인 훈련을 견디며 고생해야 하나?

나는 불평만 늘어놓는 반대꾼이 아니다. 대안을 제시하겠다. 올림픽 대표 선발경기를 아마추어에게 '아무나' 참가할 수 있게 개방하라. 기존의 제도에서 만들어 놓은 엘리트선수에게는 그 실력을 참작해 좀 높은 시드를 주고 전국 각지에 알려 올림픽 예선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참가할 수 있게 하라. 서울 지역 예선, 경기 지역 예선, 부산 지역 예선 등을 거친 평범한 사람들이 엘리트선수들과 경기하게 하라. 물론 결론은 똑같은 것이다. 엘리트 선수들이 올림픽에 나갈 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 누구나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그 자체로 우리 자신이 올림픽의 주인이 된 것이다. 예선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올림픽에 참여한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엘리트선수를 육성하는 것을 그만두라. 평생 탁구만 치다가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두세 번씩 취미로 치던 사람들 중에 전국예선을 거쳐 뽑힌 사람을 대표로 올림픽에 보내라. 그 전국예선은 진정한 올림픽 축제가 될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 엘리트 선수를 내보낸다면 1회전 탈락이 확실할 것이다. 그러나 그 1회전 경기는 보통 경기가 아니다. 정말 멋진 경기다. 우리 옆집 아저씨가 올림픽 대표가 되어 외국 사람과 올림픽에서 경기를 하다니! 혹시라도 1회전을 통과하면? 동메달이라도 따면? 은메달이라도? 지금 엘리트 선수들이 따오는 금메달과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오지 않겠는가? 우리 옆집 아저씨를 이기고 금메달을 딴 나라 중계진은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을까. "우리 XX선수에게 진 한국 선수는 나이는 45세이고 슈퍼마켓을 운영한다고 합니다." "참 놀랍습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국위선양'아닐까?

아무나 올림픽에 나갈 수 있게 하고 국가 주도의 엘리트 체육을 점진적으로 포기하자. 그리고 전국 곳곳에 체육관과 운동장 시설을 세우자. 그렇게 되면 한국 사람들 술 좀 덜 마시고 친구들과 운동하러 다니지 않을까? 더 신나는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올림픽이 정말 기다려 질 것 같다. 나의 올림픽이 4년마다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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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올림픽

생도관 홍보의 책자 사진

by 히옌느 [신변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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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 서적의 등장

by [신변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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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찬양, 반정부, 반미, 반 자본주의 좀 하면 안되는가?
웃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북한 찬양, 반정부, 반미 반 자본주의에 대한 책은 국방부가 선정한 저 책들보다 훨씬 많다.
하필 저 책들만 쏙 골라낸 분이 어떤 사상가인지 궁금하다.
수령을 찬양하고 공산당 일당 독재에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북한처럼 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일까?
주사파가 국방부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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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계급

by 이장 [신변잡기]

경제적 생산의 영역에서 본진적인 기능을 담당한다는 독창적인 지형 위에 조재하는 모든 사회집단은 그 자신과 더불어 하나 이상의 지식인층을 유기적으로 창조하는데, 이때 지식인층은 각 집단에 동질성을 부여하고, 경제적 분야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분야에서 각 집단이 맡고 있는 고유한 역할을 환기시킨다. 자본주의 기업가는 자신과 더불어 산업 기술자, 정치경제의 전문가,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법률체계의 조직책을 창출한다.

- 그람시, 옥중수고선집 : 5


각 계급은 자신들의 입장을 규명하기 위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지식인들을 생산해낸다. 그리고 계급 사이의 여러 투쟁이 있을 테고, 이런 과정에서 각 계급의 입장은 더욱더 명확하고 예리해질테다.

'자본주의 기업가는 자신과 더불어 ... 새로운 문화와 .. 창출한다.'를 주목하자. 길거리에서의 시위와 파업만이 자본가의 지배에 대항하는 방법이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여러 방법들이 혼재할 것이고, 문화도 한 영역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문화가 그 중 큰 역할을 차지할 것이다.


새로운 문명의 창조를 위한 투쟁의 장은 그야말로 불가사의하며 어떠한 에견이나 예측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다는 특징을 지닌다. 자본가에서 노동자에게로 권력이 넘어가도, 공장은 계속해서 오늘날 생산되녹 있는 것과 똑같은 물건들을 생산할 것이다. 그러나 시, 드라마, 소설, 음악, 그림, 윤리, 언어 등은 어떤 식으로, 또 어떤 형태로 탄생할 것인가? 물건을 찍어내는 공장에서 그런 작품들을 생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예술작품의 생산과정이 계획에 따라 노동자의 힘에 의해 재편될 수는 없다. 또한 즉각적인 욕구의 충족을 위해 문화분야의 생산율을 조정하거나 통게적으로 결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분야에서 유일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일반적인 가설뿐이다. 곧 부르주아 문화(문명)와는 완전히 다른 프롤레타리아 문화가 등장할 것이며, 계급구분도 무너질 것이라는 가설 말이다. 문필가나 예술가로 입신양명하려는 부르주아 집단이 와해될 것이며, 프롤레타리아 문화만의 독특한 시, 소설, 연극, 도덕률, 언어, 그림, 음악이 나타나 프롤레타리아 사회조직을 꽃피우고 장식할 것이다.

- 그람시, 문화선집: 50


프롤레타리아 계급에는 그 자신만의 문화가 동반할 것이다. 그 문화는 부르주아 문화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며, 프롤레타리아 사회조직을 꽃피우고 장식할 것이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문화의 여러 형식들을 상상해내야만 한다. 그것은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양식이고, 여러 실험과 시도들 속에서 탄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민중가요가 그 상상과 실천의 하나의 예라고 생각한다. 민중가요를 부르는 사람들은 기존 자본주의 하에서의 대중음악의 생산양식과 그것이 소비되는 형식을 반대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을 노래로서 부르며, 또한 프롤레타리아로 살아가는 자신을 노래로서 부른다. 그 안에서 민중은 소외당하지 않는다. 기존 대중가요에서 민중은 얼마나 소외받아 왔던가. 민중가요에는 노동하는 인간으로서의 본질적 인간이 드러나 있다.


그렇기에, 최근 어떤 기획을 하면서 고대 내에서 민중가요를 부르는 노래패들을 찾아보았는데, 하나도 남김없이 절멸했더라는 사실에 굉장히 실망했다. 예전 민중가요를 부르던 동아리들은 지금 대중가요를 부르는 밴드로 변해있었다. 다른 학교의 경우는 조금 나은지, 몇몇 민중가요 동아리들은 인터넷상으로 검색도 되고, 들어가 확인해 보니 그 활동내용도 변질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런 점에서 고대안에서 연행예술 동아리들이 살아남기 힘든 현실도 알 수 있다. 일단 학교 차원에서의 지원이 적으며, 연습공간도 절망적으로 부족하다. 또한 동아리연합회는 과거 까딱하면 붕괴되었으니, 연행예술 동아리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방법은 외부 행사뿐이다.


어쨌든 두서 없었던 글의 결론은 기획이 뒤집어져서 슬프다 였다.


% 이글은 민중가요와 대중가요의 우위를 논하는 글이 아니다. 그 둘은 분명 하는 역할도 다르고, 속하는 계급도 다르기에, 우위를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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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

by 히옌느 [신변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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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나왔던 포스터, 재미있어서! 정치적 의도 따윈 없...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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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진!

by 히옌느 [신변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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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 여름의 사진!
(그리고 여포와 따님이가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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