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간과 사물의 기원' 이라는 책을 만날 확률은 얼마였을까?백만분의 일? 천만분의 일?
과학적인 국제기준이 없어서 잘 모르긴 해도 광우병에 걸릴 확률보다도 확실히 낮았다.
하지만 어쨌든 '인간과 사물의 기원'과 내가 만난 사실이 있고 난 후에는
그 확률이라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늘도 누군가는 불행하게 벼락에 맞아 죽는다.
내가 내일 그런 일을 당할 확률이 아무리 낮다고 해도
일단 그 일이 나에게 닥친 후에는 그 일은 내게 매우 중대한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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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인간과 사물의 기원'을 만났다.
잡다한 분야를 수박 겉핥기하듯 후루룩 읽던 때였는데
휙 지나가다가 인류학 분야에 '인간과 사물의 기원'이라는 멋져 보이는 책이 있길래 빌려왔다.
나는 그 책을 한참 읽으며 혼란에 빠졌고 결국 이것은 소설이라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각지의 도서관을 검색해봐도 이 책은 '문학'이 아니라
인류학이나 사회학, 철학같은 엄한 분야에 배치되어 있다.
이 책이 뻔뻔하게 인류학 서가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의자와 개가 서로를 질투했다든가, 비행기는 염력으로 뜬다든가 하는 내용이 실린 책이
단지 뻔뻔한 제목과 그럴듯한 작가이름(장 그노스)만으로 인류학 서적으로 분류되어 있다니 말이다.
우리 생활도서관에나 제대로 '문학' '소설'로 분류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서현문고는 원래는 인문학에 이 책을 꽂아두었다가 나중에는 열린책들 문학전집 속에 배치했다.
매우 탁월한 혜안이며 아마 서현문고 관계자가 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소설은 허구를 사실처럼 쓴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은 이야기는 물론이요 책 자체가 허구와 사실을 넘나든다.
작가의 정체 역시 허구와 사실을 넘나든다.
나는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는 물론이요
책을 구성하고 있는 틀 역시 파격적인 새로운 시도라고 생각했다.
이 책 존재 자체가 새로운 작품이요 틀이다. 문제작이다.
그런데 이 책은 얼마나 팔렸을까?
나는 선물로 이 책을 친구, 선배, 선생님등에게 주려고 6~7권은 팔아준 것 같다.
물론 이 책을 제대로 간파하고 분류한 서현문고에서 샀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다.
뭐 이런 책이 있어? 이거 무슨 소리야? 정도의 반응.
조금만 더 자리잡고 읽어나가면 될텐데 그 생소함과 황당함을 견디지 못한다.
연애이야기나 역사소설 같은 것도 물론 좋지만
이렇게 완전히 소설을 틀을 깨부수고 나온 새로운 소설이 아직도 인류학이니 인문학이니 사회학 서적으로 취급받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런 황당한 상황 자체가 이 책과 어울리는 상황이 아닐까도 싶다.
하지만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며 조금은 지긋이 썩소를 짓게 된다.
왜냐면 내가 쓰는 이야기들도 이 책의 이야기들과 너무나 비슷한 맥락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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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룡이 말했던 책이 바로 이 책이었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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