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교의 교훈

by [분류없음]
며칠 전 모 언론사의 시험을 보러 모 학교에 갔는데
학교 정면에 큼지막하게
'義에 살고 義에 죽자'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참 비장한 문구가 이닐 수 없다. 하지만 왜 코웃음이 나는 것일까?
시계탑에는 '時間은 生命이다'. 라고 붙어 있다.
지각한 학생들을 아마
"너 이 자식 시간은 생명인데 지각하다니 전쟁터였으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야"따위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 확실하다.

학교 로비에는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이 그려진 그림이 빙 둘러 있고 거북선 모형이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장군의 정신을 배우자'라고 쓰여 있다.
현관 옆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는데 그 한쪽에는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왜 이렇게 살고 죽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지.
군대에서나 볼 법한 이런 문구를 걸어놓는 그 학교 학생들이 불쌍해졌다.

공산당을 만나면 입이 찢어지더라도 '나는 콩사탕이 싫어요'라고 외쳐야 된다고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쳤던 때가 먼 옛날인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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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열사추모제와 외국인 축제

by [분류없음]
얼마전 민주광장에서 민중열사추모제 행사가 열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외국인 학생 축제도 열렸다. 공식명칭은 영어라서 잘 생각나진 않지만.
열사들의 사진과 이력이 담긴 포스터가 줄지어 늦가을 바람에 스산하게 펄럭이는데
바로 옆에서는 외국인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이 어울려 놀고 있다.
참 의미심장한 모습아닌가?

나는 열사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는다.
열사라는 말을 내 입으로 이야기하기가 꺼려진다.
열사라고 할 때의 그 거리감이 불편하다.
그들은 나와 별로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었을 거다.
내가 요새 대학생들처럼 평범하게 토익을 공부하고, 위닝을 하러 다니듯
과거 민주화 운동 시대의 평범한 대학생들은 누구나 데모를 했다.
그러다가 죽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열사가 되었다.

나는 가끔 노수석 열사를 생각하곤 한다.
스스로 열사가 되기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대에 놀러갔을때 연대 생활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연대 생활도서관은 스스로를 '노수석 생활도서관'이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지만 알아보지는 않았다.
그런데 올해 광주에 가서 우연히 노수석 열사의 묘소를 보게 되었다.
묘소에는 노수석 열사의 사진과 간단한 설명이 있었다. 방명록도 쓸 수 있었다.
노수석 열사는 대학교 2학년때 시위를 하다가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으로 희생되었다고 했다.
허 참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가?
노수석 열사는 96년 사망했다.
80년 광주도 아니고 96년 서울이라니 정말 안타깝고 어처구니없는 죽음 아닌가?
노수석 열사가 죽음을 각오하고 시위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영삼 불법대선자금 환수와 교육재정 확충이라는 시위 목적이 그렇게 엄청난 일은 아닌 것 같다.
노수석 열사는 운이 없었다.
그 시위에 참여했을 수많은 사람들은 '나도 대학생 때는 운동 좀 했지' 하며 그때를 추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며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주식도 하고, 술도 먹고, 이명박 욕도 하면서.

민주광장에서 열린 외국인 축제를 둘러보니
정말 여러 곳에서 온 많은 외국인들이 고대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뭔가 좋은 세상이 온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씁쓸했다.
열사가 된 젊은이들의 포스터는 바로 옆에서 늦가을 바람에 휘날리고,
왜 살아가는가? 하는 생각이 칼날이 되어 나를 향해 똑바로 쑤셔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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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by [분류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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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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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렬 감독을 욕해봤자 소용없는 이유

by [스포츠 중계]
삼성팬들은 선동렬 감독을 참 싫어한다.
하지만 선동렬 감독의 업적은 대단하다.
삼성을 맡은 이후 계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두번이나 우승했다.
그럼에도 늘 비판받는다.
과거 해태 출신이기 때문은 절대 아니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고,
선발투수를 5이닝도 채워주지 않는 경우가 많고 중간계투진을 혹사시키기 때문이란다.

맞는 말이다. 선동렬 감독은 선발투수를 매우 불신하며
팀에서 2~3선발을 맡아도 될만한 훌륭한 투수를 중간에 두고 혹사시킨다.
권오준, 권혁, 그리고 올해의 정현욱 모두 다른 팀에서라면 2~3선발이나 마무리로 손색없는 투수진이다.
중간계투 투수는 승리나 세이브를 챙기기 힘들다. 홀드라는 것이 있지만 누가 몇 홀드를 올리고 있는지
관심 있어하는 야구팬은 많지 않다.
그래서 중간계투는 고된 자리이다.

중간계투를 중시하는 것은 선동렬 감독의 야구 스타일이다.
그리고 한국야구의 특징이기도 하다.
선발투수를 중시하는 미국이나 일본 야구와는 다르다.
두산도 이재우나 임태훈에 의존하는 것은 삼성 야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화 김인식 감독도 시즌 막판 마정길을 계속 등판시키며 노망이 났다는 비난을 받았다.

중간계투를 중시하는 것은 하나의 야구철학으로 생각할 수 있고 좋은 점도 많다.
그러나 특정 선수에게 그 부담을 맡겨버리는 것은 선수 생명을 빨리 끝나게 하는 단점이 있다.
엘지의 경우도 신윤호나 이동현 처럼 한때 중간계투에서 좋은 활약을 했던 선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안타까운 일이고 팬들은 그런 투수 운용을 비판한다.
그러나 감독들은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감독들이 선수생명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는 냉혈한에 고집불통이어서 그런 것인가?

그게 아니라 팬들의 의견같은 것은 프로야구판에서 전혀~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
야구단 선수들의 월급을 주는 사람은 팬들이 아니라 모기업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같은 경우는 흑자를 내는 구단이 많다.
입장수익, 구단 물품 구입을 통한 수익이 기본이고 거기에 중계권, 스폰서 등이 따라붙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팬들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팬들의 의견에 완전히 휘둘리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런 모습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러나 적어도 구단 운영에 필요한 비용의 절대적인 부분을 오로지 모기업에 의존하는 한국야구와 다르다.
미국의 경우 야구단 자체가 하나의 기업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야구단은 모기업의 홍보용일 뿐이다.
우리 회사 야구단도 있는 대기업이요 하는 허세용이다.
야구단의 회사의 것이고 회사의 장식품이기에 팬들이 아무리 어쨌거니 저쨌거니 해봐도 모기업이 주는 눈치와는 비교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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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유일한 업적, 프로야구 개막



올해 포스트시즌 진출을 앞두고 한화와 삼성이 경쟁했다.
4강에 들기 위해 두 팀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각 팀의 팬들은 비명을 지르며 제발 이번 시즌은 포기하고 선수들을 아끼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야구단 입장에서 그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아마 내부적으로 4강 진출과 4강 탈락 사이에는 보상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한 그래도 모기업에서 200여억원씩 받아오는 것이 미안한데,
4강에도 들지 못하면 회장님 볼 낯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꼴지를 한 엘지는 프론트가 다 짤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장기적인 관점과 팬들의 마음을 헤아린 구단 운용을 할 수가 없다.
팬들이 아무리 비난해도 그것은 인터넷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또한 한 경기 평균 관중이 몇천명밖에 안 들어오고 일년에 몇억밖에 입장 수입이 안나는데
왜 팬들이 두렵겠는가?

팬들이 한 경기에 2~3만원씩 내고 평균관중 3만명을 찍어주지 않는 한
야구단은 오로지 모기업의 돈만 받아 먹는 곳이 될 것이다.
그리고 감독이 선수를 아무리 혹사하고 팬들이 가슴아파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선동렬 감독을 아무리 욕해봐야 소용없다.
그는 좋은 성적을 내고 있고 훌륭한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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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by [비상식량모음/책 보고]
요즘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격동기인것 같다.
오늘도 주식이 폭락했고 환율은 높다.
집권세력이 그토록 고대하던 '잃어버린 10년'이 돌아오는 것 같고, 전 세계 경제도 어수선한 것 같다.

선생님 아버지를 둔 탓에 경제위기나 불경기 같은 것은 사실 잘 느끼지 못하고 자라왔다.
그러나 이제 사회에 나가려고 하니 그 음산함이 느껴진다.
대학 문을 힐끔 열어 밖을 보니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다.
그냥 뒷걸음치고 싶지만 어차피 언젠가는 나가야 할 일이다.
많은 준비와 각오가 필요할 것 같다.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도 세계는 더 강력하고 나는 왜소하다.
그래서 평상심과 긴 호흠, 넓은 시야가 필요한 것 같다.
발밑만 바라보며 가서는 소중한 삶을 망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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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남한산성에서 찍은 것이다.
딱 작년 이맘때 쯤 친구들과 놀러갔었다.
그때만 해도 여유가 많았고 즐거운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좋은 친구들과 여유로운 시간. 하지만 그런 안락함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궁금하다.
저 사진에 나온 두 친구는 취직하여 회사에 열심히 다니고   있다.
좋은 직장임에는 분명하지만 과연 저때처럼 행복할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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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나는 평화로운 남한산성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잠시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예전에는 남한산성을 청나라 군대가 포위했었다.
지금은 거대한 도시가 포위해 있다.
저들은 철군할 생각이 없다. 묵묵히 그 위세를 넓힐 뿐이다.
새로 조성 중인 위례신도시는 남한산성의 턱밑까지 들이닥쳤다.  

저 숨막히는 먼지구덩이에서 나는 태어났고 살아왔다.  
주식이 폭락하고 환율이 널뛰기하는, 욕망이 들끓는 곳이다.
나는 한없이 남한산성에 머물고 싶었다.
그러나 내려와야 했다.
나의 집은 원래부터 도시였다.

남한산성을 내려오던 왕과 선비들의 생각을 어땠을까?
치욕스러웠겠지.
하지만 한편은 조금 안도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희희낙락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남 눈치를 보느라 그랬던게 아니라 진심으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자신의 철학과 신념이 송두리째 무너졌으니 말이다.
치욕과 안도감이 뒤섞여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럽고 답답했을 것이다.
그들이 남한산성을 내려온 일은 치욕이기도 했고 잘한 일이기도 했다.
치욕, 실리. 어느 쪽이라고 단정 할 수 없다.
그 사이에서 그들은 평생 고뇌하며 살았을 것이다.

남한산성에서 도시로 내려오고,
이제 막 안락한 대학 문턱을 벗어나려는 나도
평생 고민하며 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고민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평생 동안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할 것이다.


  남한산성  김훈 지음
소설가 김훈이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신작 장편.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 갇힌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다툼, 그리고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이 소설의 씨줄과 날줄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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