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야구세상

by [스포츠 중계]

오늘 꼭 일본 이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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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

by [신변잡기]

나도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

나도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 어릴 때는 누구나 이런 꿈을 꾸었을 것이다. 어릴 때는 다른 꿈도 많이 꾼다. 발명가, 과학자, 대통령, 세계정복, 우주 비행사 기타 등등. 이제 와서 생각하면 개꿈들이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다른 꿈들은 좀 허황되긴 해도 아예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꿈은 아니다. 세계 정복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시도' 정도야 할 수 있다. 대통령? 대통령 선거에 나가려면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이면 되고 전국에서 2,500~5,000명 정도의 추천을 받아 5억 원의 기탁금을 내면 된다. 이정도야 뭐 좀 어렵긴 하지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런데 올림픽에 나가는 것만은 절대 할 수 없다. 절대 안 된다.

하지만 나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만일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때 쯤, 집에 가다가 나를 우연히 본 학교 농구부 선생님에게 "너 참 키가 크구나. 농구부를 하면 딱 좋겠어. 농구부에 오면 빵이랑 우유도 매일 주는데 같이 갈래?"이런 제안을 받았더라면 나도 혹시 올림픽에 나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농구부에 들어가서 매일 공만 튀기고 가끔 맞아도 가며 훈련했는데 중학생이 되어 키가 안 크면? "농구는 키로만 하는 게 아니니까 걱정마라"라는 위로를 받겠지만 그래도 키가 안 자라면? 이런 걱정 때문에 나는 제의를 받았더라도 농구부에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들 대다수가 그냥 평범하게 학교 다니고 하라는 공부하고 살아왔고 살아간다. 어린 나이에 불확실하고 힘든 분야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 나이도 많고 훈련도 제대로 한 적 없지만 정말로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 왜냐고? 나는 사실 탁구의 천재다. 내 주변에 나를 이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보다 탁구 잘 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하지만 나는 탁구가 아니라 배드민턴 선수로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 사실 나는 그저께 처음 배드민턴을 쳐봤다. 그런데 꽤 재미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동네 할아버지들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과 배드민턴을 한번 쳐보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올림픽에 나가려면 국가대표 선발경기부터 해서 경쟁 끝에 뽑혀야 한다. 올림픽에 나가고 싶은 사람이 모두 나갈 수는 없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국가대표 선발경기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다. 나는 국가대표 선발경기에 나갈 수 없다. 아니, 왜 못 나가는가?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참 이상한 일이다.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인데 어떤 소수의 사람들만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고 대다수의 사람은 국가대표를 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전혀 없다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상황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한다.

올림픽을 통해 '태극전사'들이 '국위'를 '선양'하고 '한민족'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널리 알릴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국민들은 올림픽에 '출전'한 '영웅'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지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진다고 한다. 그러므로 올림픽에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그래서 '출전' 할 사람들은 금메달'의 '산실'인 '태릉선수촌'에서 '극한'의 훈련을 견디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자존심'과 '명예'를 걸고 그리고 병역혜택과 포상금 등을 위해서, 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영광'을 위해 올림픽에서 전 세계와 경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올림픽에는 '아무나' 나가서는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올림픽에 '아무나' 나가서야 전 세계인에게 '대'한민국의 '위용'을 떨칠 수야 없겠지.

하지만 나는 의문이 든다. 정말 올림픽을 통해 국위를 선양 할 수 있나? 그러니까 한국의 어떤 선수가 금메달을 딴다고 하면 그 경기를 보던 세계인들이 "와 한국 정말 대단하구나. 정말 우수한 민족이야." 라고 생각할까? 물론 그런 사람도 있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내가 올림픽을 보면서 다른 나라의 '국위'에 압도되는 경우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올림픽을 보면서 다른 나라 사람이 금메달을 따는 것 자체를 별로 본 적이 없다. 내가 본 올림픽에서는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환호한다. 아, 한국 선수와 결승전에서 다른 나라 선수가 이겼을 경우에는 다른 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걸 본 경우가 좀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는 나 스스로가 우울해져서 채널을 돌리거나 그 전에 방송국에서 알아서 아쉬워하며 방송을 마무리지어준다. 그리고 잊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아쉽게도 다른 나라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며 그 '국위'에 압도된 적이 없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도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것을 유심히 보며 '한국 짱'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을까? 그들도 결국 자기네 나라 선수 위주로 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올림픽을 통해 '국위'를 '선양'한다는 생각은 실체가 없는 환상 같다. 물론 중국이나 미국 같은 나라가 금메달을 수십 개씩 따는 걸 보면 참 대단한 것 같다. 그들의 '국위'는 참 대단하다. 그런데 그 나라들은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원래 무섭고 큰 나라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분명히 올림픽을 통해 '국위'를 '선양'할 수 있다. 다만 그 대상은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다. 국가대표경기를 보며 열광하고 금메달을 따는 감동적인 순간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시청하는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우리'가 '우리'나라의 '국위'에 감탄한다. "아 대한민국 짱 ㅠㅠ" 그리고 방송이 끝나며 등장하는 광고. 올림픽 공식 파트너 0000000.

물론 올림픽을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일단 운동경기는 그 자체로 재미가 있다. 땀 흘려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도 감동을 준다. 하지만 내가 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도 없어서야 되겠는가. 나를 올림픽의 시청자로 제한하고 응원단으로 제한하고 올림픽 광고의 소비자로만 제한하려고 하는 일련의 조치들이 있는 한 올림픽은 그 뻔지르르한 신성함과 거리가 멀다. 학교 다닐 때 옆 반과 축구시합을 하려고 반 대표선수를 뽑는데 반장놈이 와서 "넌 응원이나 해."라고 한다면 얼마나 기분 나쁜 일인가. 내가 축구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반의 떳떳한 구성원인 내가 대표가 될 가능성조차 박탈당한다면?

또한 올림픽만을 바라보며 평생을 바치는 엘리트 선수들도 피해자다. 세계 2위인 은메달을 따서도 국민께 '죄송'해 하거나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하는 사람들이다. 왜 이러고 살아야 하나? 왜 나는 올림픽에 나갈 수 없고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비인간적인 훈련을 견디며 고생해야 하나?

나는 불평만 늘어놓는 반대꾼이 아니다. 대안을 제시하겠다. 올림픽 대표 선발경기를 아마추어에게 '아무나' 참가할 수 있게 개방하라. 기존의 제도에서 만들어 놓은 엘리트선수에게는 그 실력을 참작해 좀 높은 시드를 주고 전국 각지에 알려 올림픽 예선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참가할 수 있게 하라. 서울 지역 예선, 경기 지역 예선, 부산 지역 예선 등을 거친 평범한 사람들이 엘리트선수들과 경기하게 하라. 물론 결론은 똑같은 것이다. 엘리트 선수들이 올림픽에 나갈 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 누구나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그 자체로 우리 자신이 올림픽의 주인이 된 것이다. 예선에 참가하는 것만으로 올림픽에 참여한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엘리트선수를 육성하는 것을 그만두라. 평생 탁구만 치다가 올림픽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두세 번씩 취미로 치던 사람들 중에 전국예선을 거쳐 뽑힌 사람을 대표로 올림픽에 보내라. 그 전국예선은 진정한 올림픽 축제가 될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 엘리트 선수를 내보낸다면 1회전 탈락이 확실할 것이다. 그러나 그 1회전 경기는 보통 경기가 아니다. 정말 멋진 경기다. 우리 옆집 아저씨가 올림픽 대표가 되어 외국 사람과 올림픽에서 경기를 하다니! 혹시라도 1회전을 통과하면? 동메달이라도 따면? 은메달이라도? 지금 엘리트 선수들이 따오는 금메달과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오지 않겠는가? 우리 옆집 아저씨를 이기고 금메달을 딴 나라 중계진은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을까. "우리 XX선수에게 진 한국 선수는 나이는 45세이고 슈퍼마켓을 운영한다고 합니다." "참 놀랍습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국위선양'아닐까?

아무나 올림픽에 나갈 수 있게 하고 국가 주도의 엘리트 체육을 점진적으로 포기하자. 그리고 전국 곳곳에 체육관과 운동장 시설을 세우자. 그렇게 되면 한국 사람들 술 좀 덜 마시고 친구들과 운동하러 다니지 않을까? 더 신나는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올림픽이 정말 기다려 질 것 같다. 나의 올림픽이 4년마다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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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올림픽

화려한 휴가...

by [비상식량모음/영화 보고]
갑자기 화려한 휴가를 보게 되었다.
라오스 친구가 국제관에서 한국 영화를 틀어준다고 하여 무슨 영화인가 가보았더니
다름 아닌 화려한 휴가였다. 허 참. 화려한 휴가라니.

나는 화려한 휴가를 보지 않았었다.
5.18에 대한 영화는 어쩔 수 없이 감상적이 되고 만화영화 수준의
선악구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5.18이라는 사건 자체가 영화를 넘어선 비현실적인 상황이었고
그 속에 있었던 일들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여 큰 슬픔과 감동과 운동의 힘으로 드러났는데
그깟 영화가 더 이상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영화를 보니 역시나 그랬다.
영화의 인물들은 광주에서 그 비현실적인 참상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의 고뇌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안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그야말로 영화속에서나 가능한 영웅의 모습으로만 그려졌다.

주인공 민우가 마지막 순간에 게엄군에게 포위되어 "폭도야 총을 버리고 항복하라"는 말을 들었을때
"우리는 폭도가 아니야"라며 외치고 총을 쏘다 죽는 게 아니라
총을 버리고 무릎 꿇고 항복하며 무력감과 슬픔에 비통한 눈물을 흘렸으면 어땠을까.
영웅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런 모습이야 말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한 인간의 절절한 모습이 아닐까?
당시 광주에 있었던 사람들의 심정은, 인간의 심정은 그런 것이 아닐까?

영화는 단순하게 흘러가 나의 미감을 찌푸리게 했지만
그래도
그래도 자꾸 한숨이 나오고 눈물이 고이려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5.18과 관련되어 한국 현대사에 버무려져 있는 모든 것들이 떠오른다.
이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같이 영화를 보는 라오스 사람과 캄보디아 사람은 영화를 보며 자꾸 킥킥댄다.
나는 눈물이 고이는데 킥킥대다니.
하지만
당연한 일이다.
갑자기 군인들이 나타나서 아무 이유도 없이 몽둥이를 휘두르고 총을 쏴대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 장면들을 보면 웃음이 나올 수 밖에!
5.18을 모르는 사람에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웃기는 영화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몇번이나 귓속말로 이야기 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에요."

사실 이것도 웃기는 말이다.
영화는 영화이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다큐멘터리 역시 실제 있었던 일은 아니다.
영화를 통한 영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 나온다고 해도 5.18을 재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5.18엔 이미지와 소리를 넘어선 실체가 있다.
5.18 자체가 너무나 비현실적인 현실이었고 5.18은 끊임없는 운동의 에너지가 되어 오늘의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삶 속에 5.18이 들어있다.
하지만
그러나
젠장맞게도
그 민주주의가 이명박이를 뽑았고 한나라당에게 과반수를 쥐어 주었다.
그 민주주의 사회의 경찰이 시민을 사냥하며 뻔뻔하게 고개를 치어든다.
5.18 앞에서 이런 사태는 얼마나 부끄럽고 참담한 일인가.  

영화의 끝부분에서 여주인공은 잠든 광주 시민들에게 확성기로 계속 이야기한다.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그렇다. 영화는 어찌되었든
5.18은 잊어서는 안된다.
올해 5월에 광주 망월동을 방문했지만 어느덧 까맣게 잊고 있었던 5.18을 되살려준
화려한 휴가는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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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e-AniFest2005 상영작

by 히옌느 [비상식량모음/영화 보고]


오래 전에 갈무리해 둔 주소가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유용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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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by 히옌느 [비상식량모음/영화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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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좀 ...

(스포일러 포함)

양해훈 감독은 이걸 판타지로 만들고 싶어했다지만 뭐랄까, 이건 확실히 판타지가 아니다. 영화는 개연성 없는 부분(!)만 제외하면 정말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내가 그걸 느껴본 세대에 자라서 그런가? 집단으로 가해지는 이유없는 폭력이라든가, 혹은 인터넷으로 현실의 문제를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거 생각보다 꽤 심각하다) 같은 것들?

제목이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 라서 저수지와 치타가 어떻게 나올까 궁금했는데 저수지는 그냥 저수지가 아니라 꽁꽁 언 저수지가 나온다. 일단 저수지는 영화 초반과 영화 끝에서 두 번 나온다. 처음에 카메라가 겨울 저수지의 그 막막함을 정말 실감나도록 담는데, 거기서 왠지 이 영화를 다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무데도 나오지 않고 제목에만 나오는(내가 못 본 것일수도) 치타라는 것은 소설 타잔에서 나오는 타잔의 부하? 같은 침팬치, 그 아이를 뜻하는 것 같다. 사실 그 정 안 가는 소설이든 영화든 타잔(사실 디즈니를 통해서만 알고 있다;)에서 치타는 정말 제일 불쌍한 녀석이다. 사람 말을 좀 알아듣는다는 이유로 타잔과 제니에게 이용당하고...

사실 여기 나오는 주인공인 재휘도 그닥 사정이 다르지 않다. 그 애도 사람 말을 알아듣는 침팬치에 지나지 않다. 재휘는 착하다기보단 그냥 소심하다. 착한 애랑 나쁜 애의 대립을 그리려고 했던 건 아니다. 나름 나쁜 아이(표뭐시기)도 나중에 자기 여자친구를 노리고 있는 것 같아서 괴롭혔다고 하지 않았나. 어쨌든 그 애도 이유있는 악역이다. 문제는 저수지도 치타도 아니라 '건진'에 있다. 음? 건져지긴 했다. 두번 다 그 타잔(영화 속에 이름이 있지만 잊어버렸다;)에 의해 건져졌다. 고통을 준 것도 가해자고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을 주는 것도 가해자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단순 공식에 따라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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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임지규씨

그렇지만 역시 어쩌라고? 라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 사라지는 것도 이해하겠고 왜 그렇게 끝을 맺었는지 이해하겠는데, 음,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보고 나서 별로 할 말이 없다. '재미있네' 이거 이상? 그런데 이게 사안이 심각한 사안인만큼 재미있네 정도로 끝내면 나 같은 소심한 사람들은 불안에 떨게 된다. 나 이런 일 당하면 어떡하지? 이렇게. 물론 지금까지 재휘가 처했던 상황에 있던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조치라고는, 그저 정말 순간이동주문(현실에서 쓸 수있는, 뭐 전학이라든가) 정도밖에 없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재휘가 쓰는 순간이동주문은 어느 정도 감독과 주인공의 게으름의 발로인 것 같다. 뭐랄까, 굉장히 통찰력있게 관계를 분석했는데, 그래서......에 대한 말이 없다. 만약 이것이 고발영화였다면 오히려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 같다. 그런데 이건 무려 판타지!다. 나중에는 아무 문제도 해결되지 못한 채 열심히 일하고 있는 재휘를 보여준다. 결국? 다른 집단으로 가면 이런 사람들은 보통 사람처럼 살 수 있는 것이야? 그게 결국 가해자가 건져낸 치타일까?

사실 제일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여자가 나오는 방식, 이었는데 이건 뭐, 이런 여자가 어디 있어! 라고 외칠 정도로 정말 판타지적인 여자다. 나름 남자친구의 친구라는 표뭐시기에게 성추행(강간인지는 확실히 안 나왔다) 당하고서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기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슬픔을 감추면서 그날 밤 바로 관계를 할 수 있다니... 헉; 거의 성녀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런 마이너스적인 판타지가 나오는 부분은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다. 게다가 평소에 그 여자가 나오는 방식도, 문을 닫아걸고 외부와 단절된 주인공을 구원해주는 말괄량이 천사☆처럼 나왔는데, 그래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 치고, 어째서 모든 것이 현실적이면서 이런 부분만 개연성이 부재한걸까. (재휘가 너무 예뻐서 갑자기 사랑에 빠져 모든 걸 바치기로 한 건가......)

어쨌든 주인공 역을 맡은 임지규씨, 너무 귀여웠다. 꽃돌이라고 선전하더니 그 말이 틀리지 않다! 몇 몇 장면에서는 정말 숨막히게 예쁘다. 특히 처음 부분에 벌거벗은 다리의 각선미... 은하해방전선에도 나온다고 하니 얼른 보러 가야지! 거의 첫 작품이나 다름없다고 들었는데, 꽤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셨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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